경주 진덕여왕릉 진짜 위치는? 도당산 고분 재조명

시작하며

경주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왕릉 중 하나가 바로 진덕여왕릉이다. 선덕여왕과 무열왕 사이 왕인 그녀의 무덤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최근 고고학적·사서적 기록을 통해 도당산 식혜곡 고분군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1. 왜 진덕여왕릉의 위치가 의심을 받게 되었을까?

진덕여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이후 즉위한 신라 마지막 성골 왕이다. 그녀 이후로 신라는 진골 귀족 출신의 왕들이 등장하게 되며, 통일 신라의 길로 접어든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인물의 왕릉은 오히려 확실치 않다. 지금 알려진 진덕여왕릉은 무열왕릉과 가까이 있으며, 12지신상으로 장식된 특징적인 봉분이지만 신라 후기의 ‘발해식’ 양식이 적용되어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많다.

내가 의문을 가졌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선덕여왕릉과 무열왕릉은 고고학적으로 확실한데, 그 사이인 진덕여왕릉만 애매한가?

 

2. 삼국사기 속 단서, ‘사량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654년 3월 기록에 따르면 진덕여왕은 사량부에 장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후 기록에서 사량부 = 고부로 표현되고, 이는 오늘날 경주 남산 서학 지구 일대로 추정된다.

📌 삼국사기의 단서 요약

구분 내용
왕명 진덕여왕
사망 시기 654년 3월
장례 위치 사량부(고부)
고부 위치 경주 남산 북서부 일대로 추정
주변 고분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 등장하는 버풍왕릉 가능성

이 단서만 보더라도 현재 ‘진덕여왕릉’으로 알려진 곳보다, 남산 북서쪽 혹은 도당산 일대가 더 자연스럽다는 결론에 가까워진다.

 

3. 도당산, 고대 정치 중심지였던 남당이 있었던 곳?

도당산은 단순한 봉우리가 아니다. 남당이 존재했던 곳으로 알려진 사로곡 중심지다.

남당은 신라 시대 초창기부터 정사(政事)와 형벌 논의, 정치 행사, 죄수 심문 등이 이뤄지던 정치 공간이었다. 이런 장소의 입지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그 인근에 고분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 도당산 관련 사서 기록

연도 내용
249년 궁궐 남쪽에 남당 설치
251년 남당에서 정사 집행 시작
268년 남당에서 형벌 논의
585년 남당에서 죄수 심문
이후 기록 사라짐 → 기능 상실 또는 이동

 

4. 도당산성의 성벽과 고분은 어떤 관계일까?

도당산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산성이 존재한다. 특히 성의 구조는 엄지손가락을 감싸듯 설계되어 있으며, 그 끝부분에는 고분들이 자리하고 있다.

📍 도당산성과 고분 배치

  • 엄지 손가락 모양 능선에 삼국시대 건물지
  • 성벽 하부의 목탄층 방사성 연대: 340~400년
  • 성의 사용 시기: 4세기 초~7세기 중엽
  • 진덕여왕 치세: 647~654년

이 시기적 일치는 내가 도당산 고분을 진덕여왕릉으로 다시 보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5. 도당산 식혜곡 고분군이 진덕여왕릉일 가능성

남산과 월성 사이에 위치한 도당산 식혜곡 고분군은 현재 약 4기 정도의 봉분이 확인되고 있으며, 흙 재질이 쉽게 바스러지는 특성 때문에 실존 고분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식혜곡 고분군의 특징 요약

항목 내용
고분 수 확인된 것만 4기, 더 있을 가능성 높음
위치 남산 북서부, 도당산 성벽 인근
특징 월정교 고대도로와 연결, 고지대가 아닌 습지형
양식 횡혈식 석실분 추정
상태 아직 정식 발굴되지 않음

특히 고분이 물이 모이는 습지에 조성된 점은 특이하다. 이는 후대 민묘가 들어서지 않았기에 원형 보존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

내가 이 고분군을 눈여겨본 이유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물리적 조건이 가장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마치며

진덕여왕릉은 지금까지 알려진 위치 외에도 도당산 식혜곡 고분군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고고학, 사료, 지형 분석까지 모두 종합해보면, 이 고분군이 진덕여왕릉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도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채 숲속에 묻혀 있는 고분들. 7세기 중엽 신라의 권력 중심이 옮겨갔던 그 시기의 단서를, 앞으로 이 고분군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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