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외곽 방어선 따라 걷는 경주 역사기행 코스
시작하며
경주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건천읍 일대, 숲이 우거진 능선 위로 성벽의 흔적이 이어진다. 이곳은 신라 천년 수도였던 서라벌의 서쪽 방어선, ‘부산성’이다. 지금은 잔디와 돌무더기가 어우러진 폐허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 걸음 들어가면 마치 오래된 군사 기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고요한 산성과 절터, 그리고 잊혀진 고분들을 걷는 여행이었다. 눈앞에 번듯한 건물은 없지만, 천년 전 신라인의 삶과 전쟁, 그리고 기도를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1. 이런 코스로 다녀왔다
📍당일치기 여행 경로 (차량 기준 / 도보 병행)
경주 시내 → 보문동 고분군 → 보문사지 → 천룡사지 → 부산성
시간은 느긋하게 잡는 게 좋다. 대중교통보다는 자차 또는 렌트카가 유리하며, 도보 구간이 꽤 있기 때문에 편한 복장과 운동화를 준비했다.
2. 첫 코스: 보문동 고분군, 신라 귀족의 무덤을 만나다
(1) 어디냐면
보문관광단지 북서쪽, 천년 전 평민부터 귀족까지 살았던 신라의 거주지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밭 사이에 봉긋한 봉분들이 흩어져 있다.
(2) 주목할 포인트
- 대형 고분들이 열을 맞춰 조성되어 있어 신라의 조직력, 위계의식을 엿볼 수 있다
- 가장 유명한 건 ‘보문동 부부총’이라는 쌍분 무덤. 금귀걸이, 금관, 토기류 등 다수의 출토 유물이 있다
-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지점이 많지만 관광객이 거의 없어, 조용한 산책길 느낌이다
(3) 나의 인상
관광지보다는 ‘답사지’에 가깝다. 무덤이 주는 경외감도 있지만,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특히 굴식돌방무덤의 구조를 보면 신라 귀족들이 죽은 후에도 계급을 드러냈다는 게 느껴진다.
3. 두 번째 코스: 보문사지, 이름만 남은 절터에서 마주한 불심
(1) 어디냐면
보문동 고분군에서 도보 15분 거리. 고분군을 내려오면 언덕 중턱에 남쪽을 바라보며 자리잡은 터다.
(2) 주목할 포인트
- 금당터, 당간지주 등 일부 유구가 남아 있고, 발굴된 명문 기와를 통해 ‘보문사(普門寺)’라는 이름이 확인되었다
- 금당지에서 남쪽으로 선덕여왕릉과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배치가 의미심장하다
- 보문사는 왕실 호국사찰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시기 중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3) 느낀 점
유물은 거의 없고, ‘터’만 남아 있지만 상상력만큼은 가장 많이 요구되는 곳이다. 발길이 멈춰졌던 이유는, 금당지에서 바라본 풍경이 참 편안했기 때문. 바로 앞은 넓은 들판, 멀리는 남산이 펼쳐져 있었다.
4. 세 번째 코스: 천룡사지, 폐허가 된 절터에서 발굴 현장을 걷다
(1) 어디냐면
보문사지에서 차로 10분 거리, 남산 서쪽 고위봉(495m) 아래 자리잡은 절터다.
(2) 주목할 포인트
- 절터 규모가 매우 크다. 발굴조사를 통해 3층 석탑, 종각터, 경판고, 기와 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 본래 이름은 ‘용사(龍寺)’였다고 전하며, 고려시대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 발굴에서 통일신라 시기의 유구와 조선 시대 유구가 함께 나왔다
(3) 내 눈에 들어온 것들
마치 발굴 현장 안을 걷는 기분이었다. 철책 없이 개방된 공간이 많아 유구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출입 제한구역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무너진 기단, 돌계단, 사방에 흩어진 기와 조각들을 보며, 이 절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5. 마지막 코스: 부산성, 서라벌의 서쪽 방어선
(1) 어디냐면
천룡사지에서 차로 약 10분 이동, 건천읍 송선리의 산능선을 따라 이어진 거대한 산성이다.
(2) 주목할 포인트
- 산을 따라 지은 포곡식 석축 산성. 둘레가 9km 이상으로, 규모는 월성의 수십 배
-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이 축성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 성벽, 창고터, 우물, 군사용 건물지 등 전략적 구조가 다수 확인된다
- ‘모죽지랑가’라는 신라 향가의 배경이자, 선덕여왕 시기 전투 전설도 남아 있음
(3) 내 답사 포인트
성벽의 흔적은 아직도 뚜렷하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벽처럼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특히 정상에서 바라본 경주는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보였다. 이곳에 서면 신라 군사들이 왜 이 능선을 지켰는지 실감할 수 있다.
6. 이렇게 느낀 여행
왜 이런 코스를 짰을까?
화려한 유물보다는 ‘자리의 역사’, 즉 지형과 흔적, 공간의 의미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소가 관광객이 거의 없어 고요했고, 스스로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이 많았다.
실은, 이런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신라인이 본 풍경을 나도 보고 있다는 기분, 그게 진짜였다.
마치며
경주는 한 도시가 아니다.
천년 전 신라인이 거주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죽어간 수많은 구역의 집합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왕이 다스리는 중심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낸 외곽의 시간과 공간을 걸었다.
보문동 고분군의 무덤 사이를 지나고, 절터의 기단 위에 올라서고, 돌로 쌓은 성벽 너머에서 천년의 바람을 느꼈다.
어디에도 번쩍이는 건물은 없었지만, 눈을 감으면 그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그런 역사 여행이었다.
사람 없는 경주를 걷고 싶다면, 이번 코스를 따라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경주 부산성은 건천읍 송선리 산195-2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아래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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