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부터 한국전쟁까지, 튀르키예와 한국이 맺은 묘한 인연

한국과 튀르키예, 8000km 떨어진 두 나라가 형제가 된 이유

처음엔 단순한 전쟁의 인연인 줄 알았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이 표현을 처음 들으면 조금 낯설다. 왜냐면 우리와 8000km 이상 떨어진 나라, 언어도 종교도 전혀 다른 나라가 유독 한국과만 형제라고 말하니까.
사실 이 말의 시작은 한국전쟁에서 비롯됐다. 1950년, 튀르키예는 아직 신생 독립국의 단계였고, 나토 가입을 위해 서방 세계에 자신들의 입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때 참전한 것이 바로 한국전이었다.
그래서 튀르키예군은 먼 극동으로 건너와 낯선 땅에서 싸웠고, 700여 명이 넘는 희생을 남겼다.

이 피의 인연이 ‘형제의 나라’라는 말의 출발점이었다.
다만, 여기까지만 알면 이야기가 조금 건조해진다.
그 뒤엔 더 깊은 역사적 맥락이 숨어 있다.

 

알고 보면 ‘형제국’이란 말은 튀르키예 문화에서 먼저 나온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본래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나라들끼리 “우리는 형제”라고 부른다.
그래서 튀르키예가 한국을 형제라 한 것도, 그들의 언어적 습관과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감정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현실화되었다.
튀르키예에서는 당시 파병을 ‘종교적 사명’으로 선포했다.
공산주의가 무신론을 내세우는 체제였기 때문에, 튀르키예 종교부는 한국전 참전을 ‘성전(지하드)’으로 규정했다.
그 전사들은 ‘가즈이(Gazi, 신앙의 전사)’라는 칭호를 얻었고, 전사자는 순교자로 존중받았다.
이게 단순한 외교적 파병이 아니라 종교적 명예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만큼 한국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운 나라’로 각인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의 초원에서도 흔적이 이어진다

튀르키예인들은 스스로를 ‘튀르크족’이라 부른다.
그 뿌리는 중앙아시아의 돌궐(突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돌궐과 만주의 유목민, 그리고 고구려 사이에도 일정한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직접적인 혈연 관계는 없지만, 초원의 민족들이 서로 결혼하거나 동맹을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섞였다.

그래서 튀르키예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 조상들의 제국은 코레(Kore)에서 흑해까지 뻗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코레’는 고구려 시절의 한반도 북부를 가리킨다.
이게 튀르키예 내부에서 ‘한국과 우리는 같은 뿌리’라는 인식의 작은 씨앗이 되었다.

그렇게 보면 튀르키예가 한국전쟁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잠복해 있던 민족적 연대감이 되살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형제의 나라’가 떠오른 순간, 2002년

사실 이 형제국 담론이 다시 크게 부활한 건 2002년 월드컵이었다.
3·4위전에서 맞붙은 한국과 튀르키예가 경기 후 서로 손을 잡고 그라운드를 함께 돌았다.
그 장면이 전 세계 생중계로 나가면서 “역시 두 나라는 형제다”라는 말이 다시 퍼졌다.
이후 튀르키예 관광청이나 한국의 여러 행사에서도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튀르키예에서는 지금도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한다.
한국 학교에 튀르키예어 간판이 달리고,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에는 ‘한국공원’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그 기억은 단순한 외교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 정서로 남은 셈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말보다 마음이다

튀르키예와 한국은 실제로 혈연으로 묶인 민족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흘린 피와, 서로를 향한 존중은 혈연보다 더 단단할 때가 있다.
형제란 말이 꼭 피를 나눠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같은 아픔을 나누고, 같은 가치를 위해 손을 잡았던 그 마음이 형제를 만든다.

돌아보면, 그건 외교 문서보다 더 깊은 인연이었다.
결국엔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형제의 나라는 피가 아니라 기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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