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불국사에서 발견된 십자가, 1,500년 전 실크로드의 흔적일까

신라 시대의 불국사에서 십자가 모양의 돌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처음엔 믿기 어렵다.
불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절에서, 그것도 통일신라 시기의 유물 속에서 기독교의 흔적이 보인다는 건 상식적으로 낯설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인욱 고고학자의 설명을 따라가 보면, 이 십자가는 단순한 돌무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라까지 전해진 ‘경교’라는 이름의 기독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보통 18~19세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한반도에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1,500년 앞선 시기, 동아시아에는 이미 ‘경교(景敎)’라 불리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전해져 있었다.
이들은 서방 교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쫓겨났지만,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다.
페르시아를 지나 중앙아시아, 그리고 당나라에까지 도달했으며, 결국 동쪽 끝 신라 근처까지 영향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에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라는 비석이 세워졌을 만큼 이들이 정식 종교로 인정받기도 했다.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와 함께 실크로드의 4대 종교 중 하나로 꼽혔다는 점을 보면 그 세력의 폭이 작지 않았던 셈이다.

 

러시아 고고학자가 발견한 ‘발해의 십자가’

신라보다 조금 앞선 시기,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가 발해 지역의 절터에서 바람개비 모양의 점토 십자가를 발견했다.
이 독특한 형태는 동시리아식, 즉 네스토리우스파의 전형적인 십자가였다.
그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하느라 자신들의 상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불교 사원의 구조물 속에 작게 새기거나, 장식의 일부처럼 숨겨놓곤 했다.
바깥에서 보면 단순한 문양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바람개비처럼 벌어진 팔을 가진 십자가가 있다.

그 시기의 동북아시아는 종교의 경계가 느슨했다.
불교, 샤머니즘, 조로아스터교, 경교가 한 지역 안에서 섞여 공존하던 시대였다.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 십자가의 사연

1950년대, 숭실대학교의 한 교수가 불국사를 답사하던 중 돌을 괴어 솥을 걸던 자리에서 우연히 십자가 모양의 돌을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전쟁 직후라 절 주변은 폐허에 가까웠고, 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우연이라 여겼지만, 후대 연구를 통해 이 돌이 불국사 건축 구조물의 일부였음이 확인되었다.
부도탑이나 지단 속, 눈에 잘 띄지 않는 내부에 박혀 있었다는 점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3D 스캔 분석 결과, 이 돌은 의도적으로 다듬어 넣은 흔적이 뚜렷했다.
표면에는 네스토리우스파의 특징인 사방으로 벌어진 팔 형태가 남아 있었다.
불교의 성전 안에 이런 상징이 숨어 있었다는 건, 누군가 일부러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십자가를 새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강 교수는 이 십자가가 신라 사회의 국제성과 관련 있다고 본다.
당시 신라는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로, 서역의 상인과 기술자들이 활발히 드나들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소그드인들은 상업과 조각, 건축에 능했던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불국사 같은 대규모 건축 사업에는 각지의 석공과 장인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중 일부가 네스토리우스파 신자였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대놓고 예배를 드리거나 선교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들의 신앙을 잊지 않기 위해, 돌 한 조각에 작게 십자가를 새겨 넣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행위는 종교적 저항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였는지 조용히 남기는 방식이었다.

 

경교의 십자가는 왜 숨겨졌을까

당나라에서 한때 공인받았던 경교는 곧 탄압을 받았다.
‘회창폐불사태’ 이후 수많은 종교인들이 도망쳤고, 경교 신자들도 변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상징을 드러낼 수 없었다.
대신 불상 아래, 건축물 속, 무덤의 장식 안에 조용히 남겨 두었다.
겉으로는 불교 사원이지만, 안쪽에는 또 다른 신앙의 흔적이 숨겨져 있는 셈이었다.

이런 방식은 신라뿐 아니라 몽골과 중앙아시아에서도 흔히 보인다.
경교는 자신들의 종교를 널리 전하려 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감추는 쪽을 택했다.

 

고대 종교의 공존 방식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서로 다른 종교가 한 공간에 섞여 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대의 종교는 지금보다 훨씬 유연했다.
불교인이라도 다른 신의 상징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샤먼의 허리띠에 불상의 장식이 매달려 있던 시기도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신앙은 배타적인 진영이 아니라, 삶 속의 다양한 믿음 중 하나였다.

불국사의 십자가도 그런 맥락으로 봐야 한다.
누군가의 조용한 신앙이, 거대한 불교 건축 속에 작은 흔적으로 남은 것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는 의미

강인욱 교수의 말처럼, 이 발견은 단순히 “신라에 기독교가 있었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보다는 실크로드의 다양성이 신라와 발해에도 예외 없이 스며들었다는 증거에 가깝다.
종교가 충돌이 아닌 공존의 상징이던 시절, 사람들은 서로 다른 믿음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결국 불국사의 십자가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을 대하고 있는가.
돌 속에 감춰진 그 작은 십자가가, 오히려 신라가 얼마나 국제적이고 포용적인 사회였는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신라의 십자가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오래된 지혜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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