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로 가득한 삼국유사, 역사와 맞서 쓴 한 스님의 선택
삼국유사는 역사책이 아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고개가 갸웃해졌다. 교과서에서도 배우고, 한국 고대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책인데 역사책이 아니라니. 그런데 이 말은 누군가의 과격한 해석이 아니라, 이 책을 엮은 일연 스님 스스로가 선택한 표현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보면 이 지점이 꽤 흥미롭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깊은 산속에서 전설만 수집하던 무명의 승려가 아니었다. 고려 후기 최고의 지성과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아 국사로까지 추대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책에 굳이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겸손 이상의 선택처럼 보인다.
삼국유사라는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삼국유사의 ‘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역사서의 사자가 아니다. 사건, 사적에 가깝다. 그리고 ‘유사’는 더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 혹은 개인의 사적을 정리할 때 쓰이던 말이다. 국가가 편찬한 정사와는 일부러 거리를 둔 표현이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왕의 계보와 국가의 성립 과정,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다만 그 옆에 신화와 전설, 기이한 이야기들이 함께 실려 있다. 아이의 시력이 기도와 노래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신비한 존재가 왕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들처럼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역사책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처음엔 왜 이런 이야기까지 굳이 남겼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다른 책과 나란히 놓고 읽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책은 애초부터 삼국사기를 강하게 의식하고 쓰였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삼국사기를 정면으로 바라본 기록
삼국사기는 유교적 역사관에 따라 편찬된 책이다. 국가와 질서, 도덕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만을 골라 담고, 괴이한 이야기나 귀신과 관련된 기록은 과감하게 배제했다. 공자가 말한 괴력난신을 역사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언제나 일관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삼국사기 역시 시조의 탄생을 설명할 때는 하늘의 징조나 신비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은 미신이라는 이유로 잘라냈다. 어디까지가 허용이고 어디부터가 배제인지, 그 선은 명확하지 않았다.
삼국유사는 바로 이 모순을 건드린다. 어떤 신화는 남기고 어떤 신화는 버리는 기준은 누가 정했느냐는 질문이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빠져나간 이야기, 버려진 이야기들을 다시 모아 첫머리에 배치한다. 유학자들이 가장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들을 일부러 가장 앞에 둔 셈이다.
역사라는 이름을 일부러 피해 간 선택
여기서 인상적인 건 태도다. 내용은 꽤 도발적인데, 제목은 극도로 겸손하다. 겉으로 보면 “이건 역사책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다. 오히려 한쪽 팔을 접고 시작한 승부에 가깝다.
역사라는 이름은 붙이지 않겠다. 대신 묻는다.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역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가.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잘라낸 기록들이 오히려 더 많은 단서를 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이 삼국유사라는 제목 속에 숨어 있다.
이 지점에서 불교적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모순과 역설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다. 직선과 곡선, 공과 색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사고. 깔끔하게 나누기보다 애매한 영역을 그대로 끌어안는다. 삼국유사는 그런 방식으로 쓰인 책처럼 읽힌다.
그래서 지금 다시 삼국유사를 읽게 된다
현대 역사학은 신화와 전설을 단순히 거짓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상징과 구조를 분석해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를 복원하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삼국유사는 잘라내지 않고 남겨둔 기록 덕분에 훨씬 많은 해석의 재료를 제공한다.
삼국사기는 정제된 대신 빈틈이 적고, 삼국유사는 혼란스럽지만 단서가 많다. 그래서 어떤 주제에서는 오히려 삼국유사가 더 현실적인 배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날아다니는 이야기와 신비한 장면이 많아 보여도, 그 안에 담긴 맥락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다.
결국 삼국유사는 이렇게 말하는 책처럼 느껴진다. 나는 역사라는 이름을 달지 않겠다. 대신 판단은 네가 해라. 이 이야기들이 정말 쓸모없는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빡빡한 기준으로 역사를 재단해왔는지.
돌아보면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삼국유사는 겸손해서 역사책이 아닌 게 아니다. 피해서 붙인 제목도 아니다.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한 발 물러선 선택에 가깝다. 역사라는 틀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그 기준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불려 나오는 기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이 말로 정리된다. 역사라고 부르지 않았기에, 더 역사에 가까워졌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