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결국 함께 나누는 일, 민속학자 이건욱 박사와의 대화에서 배운 것들
처음엔 단순한 인터뷰일 줄 알았다
처음 이건욱 박사님과의 인터뷰 영상을 봤을 때는 그저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 정도겠지 싶었다.
그런데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귀신 이야기에서 시작해, 결국엔 문화의 본질로 가 닿는 그 흐름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박사님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근무 중이며, 러시아에서 인류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의 말투엔 묘한 온기가 있었다. 학문적이지만 건조하지 않았다. “민속이란 결국 우리의 생활사입니다”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모아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계속 이어지는 공간이구나 싶었다.
외국인이 더 많이 찾는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경복궁 옆에 있다. 입장객 중 60%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이건욱 박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민속은 우리의 일상이에요. 외국인들은 낯설어서 오지만, 한국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서 잘 안 오죠.”
그 말을 듣고 조금 부끄러웠다.
우리가 매일 쓰는 밥그릇, 입는 옷, 명절 때의 풍경이 전시된 곳이라면 오히려 더 가까이 가야 하는데, 오히려 외국인들에게만 흥미로운 공간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는 덧붙였다. “박물관에 오면 사람들이 말이 많아져요. 다 자기가 아는 물건들이거든요.”
그 장면이 눈에 그려졌다.
누군가는 할머니 댁에서 봤던 놋그릇을 보고, 또 누군가는 아버지의 낡은 농기구를 보고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
그게 바로 민속학의 생명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기억이 다음 세대의 문화가 된다
인터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물질문화 조사’라는 표현이었다.
민속학자들은 한 집에 들어가 그곳의 물건들을 모두 기록하고, 필요하면 사진을 찍고, 때로는 기증받는다.
그가 들려준 말 중 하나가 아직도 귀에 남는다.
“한 세 번 정도 다시 태어나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어요.”
단순한 직업 애정이 아니라, 그가 ‘사람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말로 들렸다.
박사님은 민속학을 ‘살아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학문’이라 했다.
고고학이 ‘묻힌 사람들’을 연구한다면, 민속학은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의 흔적을 붙잡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현장에는 언제나 웃음소리가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고.
귀신 이야기에서 철학이 나온다
이건욱 박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장 조사를 하며 겪었던 여러 경험도 들려줬다.
언뜻 들으면 괴담처럼 들리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었다.
그는 “무서운 일도 결국은 그 사회가 가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했다.
귀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는가였다.
그가 말한 ‘티무르의 무덤 이야기’도 그랬다.
단순한 공포담이 아니라, 한 시대의 신앙과 정치, 그리고 인간의 두려움이 얽힌 역사였다.
그래서 민속학자에게 귀신은 단순한 유령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남긴 흔적이었다.
종교보다 오래된 우리의 신앙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무속으로 이어졌다.
박사님은 “무속은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했다.
그 안에는 우리의 옷, 노래, 춤, 이야기, 세계관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당이 부르는 사설 하나에도 저승의 세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념이 담겨 있다.
그는 흥미로운 말을 했다.
“우리 전통에서 저승은 위아래가 아니라 서편이에요. 수평적으로 간다고요.”
죽음조차 수평적으로 보는 세계관, 그 말에서 한국인의 사유 방식이 느껴졌다.
박물관에서는 실제로 굿과 관련된 전시도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직접 굿을 재현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미디어 전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굿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노는 자리라는 것.
그게 바로 문화의 시작이자 공동체의 기억이다.
“문화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입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건욱 박사가 한 말이 오래 남았다.
“문화는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공유의 개념이에요.”
그는 사람들이 박물관에 올 때 불편한 마음보다 열린 마음으로 오길 바란다고 했다.
그곳은 누군가의 과거를 구경하는 자리가 아니라, 추억과 기억,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불교도, 기독교도, 무속도 모두 처음엔 외래였지만, 결국 우리 삶 속에서 스며들어 ‘전통’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쌓이면 모든 것은 문화가 된다.
한국 문화가 세계에 통하는 이유
이건욱 박사는 최근의 K-콘텐츠 열풍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봤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귀신이나 전통에 열광하는 이유는 ‘낯설지만 이해 가능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안에는 동양의 신화, 인간의 갈등, 그리고 보편적인 감정이 함께 녹아 있다.
그는 “코리아는 갈증이 생길 때마다 등장하는 음료수 같은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조금 과장처럼 들리지만, 묘하게 와닿았다.
결국 한국 문화의 힘은 닫히지 않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우리는 늘 다른 문화와 부딪히며, 흡수하고, 다시 우리 것으로 바꾸어왔다.
그게 이건욱 박사가 말한 ‘공유의 문화’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이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
“문화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그 문장은 단순한 학자의 명언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이었다.
누군가의 생활도, 누군가의 물건도, 누군가의 전통도 ‘내 것’으로 두지 않고 ‘우리 것’으로 나눌 때 비로소 살아난다.
돌아보면, 박물관은 과거를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결국 문화란, 그렇게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일지도 모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