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후가 가져온 파사석탑을 본 일연, 역사와 신앙 사이에서의 고민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김해 지역에 전해 내려온 전설이다. 그 중심에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후와, 그녀가 바다를 건너올 때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이 있다. 한편, 이 전설을 다시 되살려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고려 시대의 고승 일연이었다. 그는 《삼국유사》에 이 이야기를 적으며 단순한 전설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허황후가 김해로 오던 길, 거친 파도 속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자 아버지가 탑을 배에 실으라고 했다는 부분은 잘 알려진 대목이다. 탑을 실자 바다가 잔잔해졌다는 이 전설은 단순한 신화처럼 들리지만, 일연은 여기에 역사적 맥락을 더했다. 그는 직접 파사석탑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나는 돌이 아니다”라고 기록했다. 붉은 무늬가 희미하게 섞인 사암 계열의 돌, 석재 전문가 수준의 관찰이었다. 실제로 현대에 이르러 국립박물관과 대학의 분석 결과, 이 돌이 한국산이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남부에서 나는 염남석 계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연이 파사석탑을 보며 느꼈던 생각

일연은 단순한 승려가 아니었다. 고려 시대 불교계 최고 승려로서 전국의 사찰 건립과 중건을 관리하던 인물이었다. 그에게 탑의 재질과 구조는 신앙의 상징이자 예술의 결정체였다. 그래서 그는 파사석탑을 보며 감탄했지만, 동시에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허황후가 이 탑을 함께 가져왔다고 해서 불교가 그때 전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탑이 왔을 뿐, 승려도 불경도 오지 않았다.” 그 한 문장에는 일연 특유의 합리성과 겸허함이 담겨 있다. 신앙의 입장에서야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래’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테지만, 그는 끝내 그렇게 단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일연은 파사석탑을 바라보며 역사와 신앙의 경계에서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허황후가 바다를 건너며 지켜낸 신앙의 상징, 그리고 그 탑이 세워진 왕후사(현 호계사 자리)는 불교 공인 이전에 이미 불심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기록의 마지막에 덧붙인 “불법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구절은, 신앙보다 역사적 사실을 우선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신앙과 기록, 두 시선의 교차점

파사석탑의 전설은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새로운 해석을 낳았다. 조선 후기 김해부사 정현석이 탑을 허황후릉 앞으로 옮긴 것도,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왕비의 탑은 왕비 곁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전설은 다시 신앙으로 돌아왔다.

 

현대 연구자들은 이 탑의 유래를 허황후 설화와 구분해 본다. 불교적 신앙의 상징이 후대에 허황후 이야기와 결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연의 기록 속에는 단순한 합성 전설 이상의 통찰이 있다. 그는 ‘이 탑이 외국을 진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모호한 문장을 남겼다. 그 다음엔 “자세한 내용은 가락기에 있으니 참고하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그 책, 《가락국기》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일연이 느꼈을 안타까움

일연에게 파사석탑은 불교 전래의 증거이자, 가야의 국제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진실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그가 남긴 표현 중 ‘안타깝다’는 감정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황후가 정말 아유타국에서 왔는가, 탑의 석재가 어디서 왔는가, 불교가 정말 그때부터 있었는가—그는 그 모든 질문 앞에서 침묵을 선택했다.

 

지금 우리가 파사석탑을 마주한다면, 일연이 그때 느꼈던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탑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안의 시간과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흩어져 버렸다. 역사와 전설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일연은 신앙인으로서의 열정과 역사학자로서의 냉철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탑은 전설의 증거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의 흔적이다.”

 

※ 이 글은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다룬 해석형 칼럼으로, 《삼국유사》와 현대 연구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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