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제 무너지는가, 이란 시위가 던지는 오래된 질문

이란의 거리가 다시 불타고 있다.
라디오와 뉴스 화면 속에서 들리는 건 총성과 구호, 그리고 “아자디(자유)”라는 외침이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이란이라는 나라가 반복해온,
권력과 신앙, 민심의 순환을 상징하는 단어다.

 

1979년의 혁명도, 2009년의 ‘녹색 운동’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시작됐다.
‘생활이 어렵다’는 절박함이 ‘체제의 부정’으로 바뀌는 순간, 역사는 늘 방향을 바꿨다.
지금의 시위 역시 처음에는 경제였다. 급등한 환율, 폭등하는 물가,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1인당 7달러 쿠폰’이 도화선이 됐다.

 

쿠폰 한 장으로 막을 수 없는 분노

이란 정부는 국민에게 4개월 동안 7달러씩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약 9천원. 달러로 보면 적지 않은 돈일 수도 있지만,
실제 구매력은 무너졌다. 환율은 이미 1달러당 140만리알까지 치솟았다.
그랜드 바자르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거리로 나왔다.
“돈이 아니라 정의를 달라.” 사람들이 들고 나온 건 영수증이 아니라 분노였다.

 

이 상황은 18세기 청나라 말기의 정세와 묘하게 겹친다.
은(銀)의 유출로 경제가 흔들렸을 때, 조정은 백성에게 동전 몇 닢을 나눠줬지만
결국 그건 민심을 더 멀어지게 했다.
《한비자》에 “民不可盡用也, 亦不可盡棄也(백성은 모두 부릴 수도, 모두 버릴 수도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란의 정권은 지금 이 말을 정반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민심을 잠시 달래려다 완전히 잃었다.

 

거리의 박자는 레자샤의 이름을 부른다

이번 시위의 구호에는 낯익은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레자샤’. 20세기 초 근대화를 밀어붙였던 이란의 국왕이다.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는 왕정 복귀를 바란다는 뜻이라기보다,
당시 성직자들의 권력을 제어했던 강한 개혁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시민들이 “레자샤여 평안하소서”를 외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질서와 개혁의 기억을 그리워해서다.

 

이 장면은 조선 말기 개화파가 ‘세종의 시대’를 이상화했던 모습과도 닮았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의 질서’ 속에서 미래의 질서를 꿈꿨다.
그리고 그런 꿈은 언제나 거리에서 시작됐다.

 

경제의 실패는 곧 신념의 균열로 이어진다

이란 정부가 싸게 공급한 달러를 일부 수입상들이 사적으로 빼돌렸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도둑은 권력 안에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 유학자는 《맹자》에서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했다.
민심이 떠나면 제도와 이념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권은 여전히 ‘지도자의 권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대통령과 최고지도자 사이의 균열설이 돌고,
정부는 “절약이 애국”이라며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을 요구한다.
그 말은 마치 불타는 집 앞에서 물 한 바가지 아끼자는 소리처럼 들린다.

 

고전의 시선으로 본 지금의 이란

역사에서 권력은 대체로 같은 길을 걷는다.
부패가 쌓이면 통치자는 외부의 적을 탓하고,
그 다음엔 국민을 훈계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거리의 함성’이 있었다.
《자치통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民怨積於內 則外侮乘之(민심이 안에서 쌓이면 외적이 그 틈을 탄다).”

 

지금의 이란이 딱 그렇다.
미국의 제재는 외부의 압박이지만, 그 틈을 만든 건 내부의 무능이다.
정부는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결정을 내릴 용기가 없다.
1988년, 호메이니가 이란-이라크 전쟁을 끝내며
“쓴 잔을 들었다”고 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 이란이 그 ‘쓴 잔’을 다시 들어야 할 시점이다.

 

시위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크다

라마단이 다가오면 종교적 긴장과 경제적 압박이 맞물리며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1979년 혁명도 넉 달이 걸렸다.
지금의 시위가 그보다 짧을 이유는 없다.

 

역사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권력은 언제 무너지는가?”
답은 언제나 같다.
백성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

 

끝에 남는 건 냉정한 통찰 하나다.
권력은 힘으로 유지되지만, 체제는 신뢰로 유지된다.
이란의 거리에 울리는 구호는 단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어디에 존엄을 두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언젠가 후대의 역사책이 지금의 이란을 기록할 때,
아마도 이런 문장이 남을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침묵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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