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 역사는 어떻게 체제를 바꿔왔는가

이란이 흔들리고 있다.
테헤란의 인터넷은 끊겼고, 거리엔 군대 대신 시민들이 남았다.
‘샤도 싫고, 최고지도자도 싫다.’
이 단 한 줄의 구호가 지금의 이란을 가장 정확히 설명한다.
왕정도, 신정도 아닌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목소리.
이건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체제의 해체와 재구성에 가까운 흐름이다.

 

며칠 사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은 모두 입장을 바꿨다.
“이란은 안정적이다”라는 말을 거두고 “정권이 붕괴 직전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때부터 중동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권력의 붕괴는 언제나 내부에서 시작된다

로마 제국이 그랬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은 외적에 의해 멸망하지 않는다. 내부의 창조적 소수가 사라질 때 무너진다”고 했다.
지금 이란의 상황이 그렇다.
최고지도자의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를 지탱하던 신정 시스템의 신뢰는 이미 붕괴했다.
종교 권위가 신앙이 아니라 통제로 작동하는 순간, 그것은 신정이 아니라 독재가 된다.

 

조선 후기의 몰락도 같은 궤를 그렸다.
성리학은 원래 인간의 도리를 세우는 철학이었지만,
19세기 후반엔 권력층의 이익을 지키는 명분으로 변했다.
유교의 이름을 빌린 권력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이란의 신정체제 역시 ‘신의 뜻’을 내세우지만, 정작 국민의 의지를 외면하고 있다.

 

지금의 이란은 스페인과 루마니아 사이에 있다

프랑코 독재 이후의 스페인은 협상으로 체제를 바꿨다.
왕과 군부, 그리고 민주화 세력이 ‘서로의 생존’을 인정하며 권력을 이양했다.
피를 최소화한 이행, 그것이 스페인식 레짐 체인지였다.

 

반대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을 향해 총을 들었고, 결국 자신이 만든 군이 그 총을 돌려 쏘았다.
혁명은 피로 마무리됐다.

 

이란은 지금 그 두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협상의 통로를 연다면, 그들은 스페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이 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는다면, 루마니아의 반복을 피하기 어렵다.

 

고전이 말하는 권력의 수명

《한비자》에는 “국가의 위기는 외환보다 내란에서 시작된다”는 구절이 있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불의다.
하메네이 체제의 문제는 외부 제재나 미국의 압박이 아니다.
국민이 신정 체제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건 이미 정치의 종교적 기반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맹자》는 말한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그보다 가볍다.”
이 말은 민주주의 이전의 정치철학이지만, 여전히 가장 근본적인 국가론이다.
이란이 지금 이를 거스르고 있다.

 

새로운 질서로 가는 길

이란에는 정당이 없다.
호메이니 이후 ‘정치 싸움은 분열을 낳는다’며 정당 자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거대한 시위에도 지도자가 없다.
87년 한국의 민주화에 YS와 DJ가 있었다면,
이란엔 그 역할을 할 인물이 부재하다.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항상 더 큰 혼란을 불러왔다.

 

청나라가 무너질 때도 그랬다.
혁명을 외친 쑨원이 있었지만, 체제를 정리할 정치 세력이 없었다.
그 결과가 군벌의 난이었다.
이란도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지도 세력이 없는 혁명은 방향을 잃기 쉽다.

 

미국과 중동의 계산, 그리고 또 다른 제국의 그림자

이란의 붕괴는 단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사우디, 터키, 이라크, 바레인 등 주변국이 모두 흔들린다.
종파와 민족이 얽힌 이 지역에서 한 축이 무너지면
나머지는 연쇄적으로 균열이 간다.

 

미국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군사 개입보다는 ‘질서 있는 교체’를 원한다.
핵 포기를 조건으로 세속 정부를 세우는 것,
그게 가장 안정적인 시나리오다.
로마 제국이 속주를 통제할 때처럼,
미국은 중동을 다시 ‘관리 가능한 질서’로 만들려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로마가 무너진 뒤에도 서유럽은 다시 일어섰고,
조선이 끝난 후에도 한반도는 근대국가로 나아갔다.
권력은 무너지지만, 사람은 배운다.
그 배움이 제도화될 때 비로소 역사는 전진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천하의 대세는 합하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다시 합한다.”
이란의 역사는 지금 ‘흩어짐’의 국면에 있다.
그러나 흩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합이 태어난다.
그 합이 종교의 이름이든, 시민의 이름이든, 결국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마무리하며

나는 지금의 이란 사태를 단순한 ‘정권 붕괴’로 보지 않는다.
이건 문명의 전환기다.
신이 통치하던 시대에서 인간이 책임지는 시대로 옮겨가는 과정.
역사는 언제나 이런 변곡점에서 피와 혼란을 동반했다.
하지만 그 혼란이 결국 새 제도를 낳았다.

 

이란이 그 과정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변화라면,
그들이 택해야 할 길은 루마니아가 아니라 스페인이어야 한다.

 

역사는 이미 그 답을 오래전에 써 두었다.
다만, 그것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현명한가에 따라
결말은 전혀 다르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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