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170m 빌딩 논란, 세운지구 개발 갈등을 다시 생각하다

시작하며

나는 종묘 앞을 지날 때마다 잠깐 멈춰 서게 된다. 빌딩 숲 사이에 남아 있는 그 고요한 공간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간을 붙들어 두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5년, 세운지구 높이 규제 완화 발표가 나오면서 이 풍경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논쟁은 단순히 “고층 건물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도시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1. 종묘 앞 스카이라인, 단순한 높이 문제가 아니라고 느낀 이유

나는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몇 미터 차이로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질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핵심은 높이가 아니라 ‘경관의 완정성’에 있었다.

(1) 세계유산은 유적 하나만을 뜻하지 않는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세계유산의 기준에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유지하려면 진정성과 완정성이 함께 확보돼야 한다.

종묘가 세계유산이라는 말은 건물 몇 채만 보호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① 종묘는 주변 경관까지 포함한 공간이라는 점

  • 북쪽 산줄기를 등지고 남쪽으로 열려 있는 배치가 함께 유산의 일부이다.
  • 남산을 바라보는 조망 축도 그 가치에 포함된다.
  • 주변 스카이라인이 크게 변하면 공간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② 완충 구역이라는 개념이 함께 작동한다는 점

  • 세계유산은 중심 구역과 함께 완충 구역을 둔다.
  • 완충 구역은 ‘보호를 위한 배경 공간’이다.
  • 물리적 거리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공간적 영향이다.

단순히 “1km 밖이면 괜찮다”는 식의 계산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우리는 왜 늘 공사 단계에서 충돌할까

나는 부동산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도시 개발은 속도가 빠르고,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그래서 늘 사전 조율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유산 문제는 공사가 상당히 진행된 뒤 갈등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1) 김포 장릉 사례에서 본 행정의 타이밍

김포 장릉 앞 고층 아파트 논란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공사가 진행된 뒤에야 문제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① 계획 단계에서의 영향 검토가 부족하면

  • 착공 이후에는 돌이키기 어렵다.
  • 법적 다툼으로 번지기 쉽다.
  • 행정 절차 미비가 쟁점이 된다.

 

② 문화유산은 숫자로만 판단하기 어렵다

  • 반경 100m, 500m 같은 기계적 기준이 항상 맞지 않는다.
  • 조망 축이나 역사적 맥락은 수치화가 어렵다.
  • 결국 ‘해석’과 ‘합의’의 문제로 남는다.

문화유산은 법 조문 몇 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기억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3. 해외에서는 왜 도심 고층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까

나는 해외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한 가지 공통점을 느낀다. 역사 중심 구역은 생각보다 낮고 조용하다.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유산은 1,199건 이상이고, 상당수 도시가 경관 보존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 개발과 충돌해 세계유산 지위를 잃은 사례도 있다.

 

① 오만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구역(2007년)

  • 보호 구역을 대폭 축소했다.
  • 석유 개발이 원인이었다.
  • 결국 세계유산 지위가 취소됐다.

 

②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2009년)

  •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설이 문제였다.
  • 경관 훼손이 결정적 이유였다.

 

③ 영국 리버풀 해양 산업도시(2021년)

  • 항만 재개발과 대형 시설 건설이 원인이었다.
  • 도시 이미지 변화가 큰 영향을 줬다.

이 사례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등재보다 관리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4. 서울은 고층 빌딩이 부족한 도시인가

나는 솔직히 이렇게 묻고 싶다. 서울이 정말 고층 빌딩이 부족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가.

서울 도심에는 이미 수많은 초고층 건물이 있다. 금융 중심지, 업무 지구, 재개발 지역마다 하늘을 찌르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종묘 앞이어야 하는가.

 

① 관광객이 찾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 해외 방문객이 찾는 곳은 고궁, 한옥마을, 전통시장이다.
  •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외국인 방문객의 주요 관심사는 전통문화 체험과 역사 공간이다.
  • 빌딩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② 장기적 가치의 차이

  • 빌딩은 40년, 50년 뒤 재건축 대상이 될 수 있다.
  • 문화유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축적된다.
  • 500년 뒤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은 어느 쪽이 더 높은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답이 나온다.

 

5. 결국 우리 세대의 선택 문제이다

이 논쟁은 개발 대 보존의 이분법으로 나눌 문제가 아니다.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존도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을 성장 논리로 밀어붙이는 것도 답은 아니다.

나는 40대 중반이 되니 이런 생각이 더 많아졌다. “내가 떠난 뒤에도 이 도시가 기억할 풍경은 무엇일까.”

 

① 압축 성장의 기대를 내려놓을 시점

  • 큰 건물이 들어서면 즉각적 수익이 보일 수 있다.
  • 하지만 도시 브랜드는 장기적 이미지에서 나온다.
  • 문화적 신뢰는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②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서울의 모습

  • 전통과 현대가 균형 잡힌 도시인가.
  •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스카이라인인가.
  •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공간인가.

나는 종묘 앞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과거의 건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방식이 아닐까.

 

마치며

종묘 앞 논란은 단순한 재개발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거대한 건물은 언젠가 낡는다. 하지만 도시의 기억은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이 선택이 500년 뒤에도 이해받을 수 있을지, 그 기준으로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 손자 손녀가 서울을 걸을 때 무엇을 보게 될지 상상해보는 것, 거기서 답이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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