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여와 동부여 사이, 추모와 해모수의 관계를 다시 읽다
시작하며
고구려 시조를 우리는 오랫동안 ‘주몽’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사료에 따르면 올바른 명칭은 ‘추모’에 가깝다. 이름 하나만 바꿔도 시야가 달라진다. 특히 추모의 아버지로 전해지는 해모수의 정체를 따라가다 보면, 북부여와 동부여의 관계, 그리고 고구려가 누구의 계승을 자처했는지까지 이어진다. 나는 이 대목이 단순한 신화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본다.
1. 동부여는 왜 따로 불렸을까
부여 왕 해부루가 동쪽으로 옮기면서 ‘동부여’가 생겼다는 대목은 익숙하다. 그런데 나는 이 지점이 늘 걸렸다. 그냥 수도 이전이라면 굳이 ‘동’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1) 부여가 통째로 이동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장면을 읽다 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다.
① 일부 세력만 이동했을 가능성
- 기존 부여의 핵심 세력이 갈라졌을 수 있다
- 이동하지 않은 집단이 원래 터전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② 내부 갈등의 결과였을 가능성
- 새로운 세력 등장으로 권력 재편이 일어났을 수 있다
- 밀려난 집단이 동쪽으로 이동해 별도 체제를 꾸렸을 수 있다
이런 구조라면 북부여와 동부여는 단순한 지리 구분이 아니라 정치적 분화다.
(2) 해모수의 등장이 이 이동과 연결될까
기록에는 “하늘의 자손이 올 것이니 비켜라”는 식의 메시지가 나온다. 나는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보기보다, 새로운 정통성의 등장으로 읽는다.
① 새 통치 집단의 등장 암시
- 기존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의 부상
- ‘하늘’이라는 상징을 통한 권위 확보
② 이동 명령의 정치적 해석
- 상위 권력자의 통보를 신화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
- 태자 교체나 계승 구조 변화의 은유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해모수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상징적 존재처럼 보인다.
2. 해모수는 추모의 아버지인가, 해부루의 아버지인가
기록을 비교해 보면 해모수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다. 어떤 전승에서는 추모의 아버지이고, 다른 전승에서는 해부루의 아버지로 나온다. 이 차이는 단순 오류라 보기 어렵다.
(1) 가설 - 권력 다툼의 흔적일 가능성
이 경우 해모수는 북부여의 원래 통치자고, 해부루 계열이 동부여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① 해모수 세력과 해부루 세력의 갈등
- 왕위 계승을 둘러싼 충돌
- 밀려난 집단의 이동과 분리
② 추모의 위치
- 북부여 계통의 후예
- 동부여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된 존재
이렇게 보면 추모의 탈출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계통 갈등의 연장선이다.
(2) 가설 - 해모수가 한 명이 아닐 가능성
나는 개인적으로 이 가설도 흥미롭다. 해모수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위대한 통치자를 가리키는 칭호였을 수 있다.
① 복수 인물 가능성
- 서로 다른 시대 지도자에게 같은 칭호 사용
- 후대 기록이 이를 하나로 통합했을 가능성
② 신화적 통합 과정
- 여러 전승을 하나의 계보로 엮는 과정
- 정치적 정당성 강화를 위한 재구성
이 경우 모순은 줄어든다. 대신 전승의 층위가 복잡해진다.
3. 동명, 추모, 해모수는 같은 맥락일까
고구려 시조는 ‘동명성왕’이라 불린다. 부여 시조 역시 ‘동명’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나는 이 명칭의 반복이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1) 명칭의 일치가 의미하는 것
① 동명이라는 상징 공유
- 고구려가 부여의 계승을 자처했을 가능성
- 동일한 시조 이미지를 차용했을 수 있다
② 추모와 동명의 연결
- 음운상 유사성에 대한 해석 존재
- 표기만 다르고 같은 전승일 가능성 제기
이 부분은 언어학적 검토가 더 필요하지만, 최소한 고구려가 스스로를 부여 계통으로 정렬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 내가 보는 가장 현실적인 그림
나는 여러 설 가운데, 북부여 계통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서사 재구성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본다.
① 동부여와의 거리두기
- 추모가 동부여에서 핍박받았다는 설정
- 기존 권력과 다른 정통성 주장
② 북부여 계승 강조
- 고구려의 뿌리를 더 오래된 체제로 연결
- 새로운 국가의 위상 강화
국가가 성장하면 과거를 다시 쓴다. 이는 고대든 현대든 비슷하다. 내가 부동산 중개 일을 하던 시절에도, 개발 이력이 바뀌면 지역의 ‘서사’부터 달라졌다.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억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정통성이 달라진다.
마치며
해모수의 정체는 단정하기 어렵다. 추모의 친부인지, 북부여의 상징인지, 혹은 복수 인물의 통합인지 확정하기 힘들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고구려가 스스로를 북부여의 계승자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추모와 해모수 이야기를 다시 읽다 보면, 고구려가 어떤 과거를 선택해 기억했는지가 보인다. 다음에 고구려 건국 이야기를 떠올릴 때, 단순한 영웅 서사로만 보지 말고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역사는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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