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에서 홍성으로, 일제가 바꿔버린 도시 이름의 진실

시작하며

나는 지도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린다. “이 도시 이름은 언제부터 이렇게 불렸을까?” 당연하게 여겼던 지명들이 사실은 100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바뀐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 진행된 지명 변경과 행정구역 통폐합은 단순한 정리 작업이 아니었다. 공간의 힘을 빼고, 흐름을 바꾸고, 중심을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 출발점으로 충청도의 옛 중심지 ‘홍주’를 살펴보려 한다.

 

1. 홍주가 홍성이 되기까지 벌어진 일

지도에서 사라진 이름 하나에 많은 맥락이 숨어 있다. 홍주는 단순한 고을이 아니었다. 충청도 서북부를 다스리던 거점 도시였고, 군사·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 지도에는 ‘홍성’만 남아 있다.

(1) 두 번의 저항 이후 이름이 바뀌다

홍주는 의병 활동이 거셌던 곳으로 기록된다. 지역에서 두 차례 대규모 항일 의병이 일어났고, 일본군과 충돌이 이어졌다. 이런 지역은 통치 입장에서 달가울 리 없었다.

① 정치적 부담이 된 도시였다는 점

  • 의병 활동이 집중된 상징적 공간이었다
  • 지역 결집력이 강했던 행정 중심지였다
  • 기존 이름 자체가 저항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②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의 방식

  • 홍주군과 인근 결성군을 강제로 합쳤다
  • 두 지역 이름의 앞 글자를 따 ‘홍성군’으로 만들었다
  • 전통 지명은 공식 문서에서 사라졌다

이 과정은 1914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대규모 부군면 통폐합과 맞물려 있었다. 겉으로는 행정 효율이었지만, 실제로는 전통적 지역 질서를 해체하는 성격이 강했다.

 

(2) 발음 문제라는 명분

흥미로운 건 또 다른 이유다. 당시 충청남도 도청이 있던 공주와 홍주는 일본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발음이 유사했다. 우편 행정에 혼선이 생긴다는 이유가 덧붙었다.

① 행정 편의를 앞세운 논리

  • 공주와 홍주가 일본식 발음으로 비슷했다
  • 우편·공문 전달의 불편을 이유로 들었다

② 그러나 선택은 한쪽만 지워졌다

  • 공주는 남고, 홍주는 사라졌다
  • 저항의 기억이 있던 지역이 먼저 정리됐다

나는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편의’라는 말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 실감한다. 행정 효율이라는 단어 뒤에 정치적 판단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2. 철도 한 줄이 도시의 위상을 바꿨다

도시의 운명을 뒤흔든 또 하나의 축은 철도였다. 근대 인프라라는 이름으로 깔린 선로는 물류 흐름을 재편했고, 상권을 이동시켰고, 결국 행정 중심까지 바꿔 놓았다.

(1) 고부와 정읍, 역이 생긴 곳이 중심이 되다

전라북도 고부는 동학 농민 혁명이 시작된 상징적 공간이었다. 한때 넓은 도심을 가진 지역 중심지였다.

① 철도가 고부를 비켜가다

  • 호남선이 고부 중심을 지나지 않았다
  • 대신 당시 작은 마을이던 정읍에 역이 들어섰다

② 인구와 자본이 이동했다

  • 상인과 상권이 역 주변으로 모였다
  • 고부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정읍에 흡수됐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경제 중심을 재설정하는 장치였다.

 

(2) 은진에서 논산으로 중심이 이동하다

충청남도 은진은 강경포구를 품은 물류 중심지였다. 금강 수운의 핵심이었고, 전국에서 모인 쌀과 물자가 쌓이던 곳이었다.

① 전통 수운 도시의 특징

  • 포구 중심 상업 구조
  • 인구 밀집과 상업 자본 집중

② 철도 개통 이후 변화

  • 호남선 개통과 함께 논산역이 부상
  • 일본 상인과 자본이 역 주변에 정착
  • 1914년 은진군 폐지, 논산군으로 통합

결국 수백 년 이어진 이름은 사라지고, 역 이름이 지역 전체를 대표하게 됐다.

 

(3) 진위와 평택의 자리 바꿈

경기도 진위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행정 중심지였다. 향교와 관아가 있던 전통 공간이었다. 반면 평택은 작은 해안 마을에 가까웠다.

① 경부선의 선택

  • 철도가 진위 도심을 우회했다
  • 평야 지대였던 평택에 역이 들어섰다

② 행정 기관의 이전

  • 군청과 경찰서가 평택 인근으로 이동
  • 1938년 공식 명칭이 평택군으로 변경

기차역 이름이 군 이름을 삼켜버린 셈이다.

 

3. 도청 이전이 상징하는 것

도청은 단순한 행정 건물이 아니다. 그 지역의 상징이자 정치·경제 중심을 의미한다.

(1)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한 충남 도청

대전은 원래 한밭이라 불리던 농촌 지역이었다. 하지만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면서 교통 요지가 됐다.

① 철도 교차점의 힘

  • 물류와 인구가 집중
  • 상업·행정 기능이 확대

② 1932년 도청 이전

  •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갔다
  • 전통 중심 도시 공주의 위상 약화

2025년 기준 국토교통부 통계에서도 철도 접근성이 높은 지역의 인구 집중도가 지속적으로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근대 초기에도 같은 원리가 작동했던 셈이다.

 

(2) 다른 지역도 비슷했다

  • 충청북도는 충주에서 청주로
  • 경상남도는 진주에서 부산으로
  • 전라도는 나주에서 광주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도시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식민 통치에 유리한 구조로 재편된 흐름이었다.

 

그때 철도가 지나간 곳과 비켜간 곳은 어떻게 달랐을까

  • 철도가 지나간 지역: 상업 자본 집중, 행정 기관 이전, 인구 급증
  • 철도가 비켜간 지역: 상권 위축, 관공서 축소, 군 단위 통폐합
  • 기존 중심지: 역사와 상징은 남았지만 경제력 약화
  • 신흥 도시: 역 이름이 곧 지역 브랜드가 됐다

나는 도시를 볼 때 “왜 여기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도시도, 사실은 특정 시기의 정책 결정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

 

마치며

홍주, 고부, 은진, 진위. 지금은 지도에서 찾기 어려운 이름이 됐지만, 한때는 분명 지역을 이끌던 중심지였다. 이름이 바뀌고, 행정 경계가 달라지고, 철도가 다른 방향으로 놓이면서 도시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도시 역시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과거의 정책, 권력, 인프라 선택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다음에 지도를 펼칠 때는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이름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질문이 쌓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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